“여성학 전공이 제 삶을 바꿨죠” 경기도청 여성정책과 백경미 주무관 인터뷰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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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0
http://pr.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09431/artclView.do?layout=unknown

우리사회에서 여성과 관련한 혐오 범죄 증가, 미투 운동 등 젠더이슈가 주요한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면서 대학가에서 이와 관련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를 원하는 사회적 수요에 비해 젠더교육을 담당할 교원이나 학위 과정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1970년대 교양학문으로 개설되기 시작한 여성학은 한때 전국 69개 대학에서 수업이 개설될 만큼 학문적 호황을 맞이할 때도 있었지만 현재 여대를 포함해 전국에서 여성학 학위과정를 운영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대학도 젠더이슈를 다루는 교양수업 정도만 운영될 뿐이다.

이에 우리대학 총학생회 모두는 현재 학부과정에 여성학 연계전공을 설치하기 위해 여성학의 강점과 여성학 연계전공의 필요성에 대해 알리는 캠페인을 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여성학을 전공함으로써 가치관 및 커리어에 변화를 겪은 백경미 동문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1991년 우리대학 국문과(현 한국어문학부)를 졸업한 뒤 금융권에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뗀 백 동문은 당시 금융권의 성차별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끼다 박사 과정으로 여성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2009년부터 공공기관 등에서 여성정책직원 등을 담당하고 우리대학 아시아여성연구원을 거쳐 현재 경기도청에서 양성평등정책을 기획하는 주무관으로 재직 중이다. 백 동문이 생각하는 우리가 여성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숙명여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금융권에서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전공과 무관하게 입사하게 된 금융권의 성차별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있을 무렵 우리나라에는 여성학이 교양과목으로 개설되고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서점에 등장하던 때였습니다. 저도 여성학에 관심을 갖게 돼 2001년 동덕여대에서 박사과정으로 여성학을 전공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대학에는 여성학 박사과정이 없었어요. 2009년 박사 학위를 받고는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에서 여성정책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임기제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충북에서 여성연구기관의 연구팀장으로 4년간 재직했고, 우리대학 아시아여성연구원의 책임연구원 시절을 보낸 뒤 현재 경기도청 임기제 공무원으로 4년 째 일하고 있습니다.

 

2. 경기도청 여성정책과에 재직 중이신데 맡고 계신 업무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경기, 서울, 대전, 제주, 충북 등의 지자체와 일부 중앙정부에는 성평등정책을 담당하는 성평등 전담인력을 임기제공무원으로 채용하여 관련업무를 전담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기도청에서 임기제공무원으로 성별영향평가, 공무원 성인지교육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3.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여성학,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달리 여성학이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에 어떻게 여성학을 공부하게 되셨는지 계기가 궁금합니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되고 대학 내에서 여학생회가 조직되면서부터 대학 내 여성학 개설요구가 들어서고 90년대에는 거의 모든 대학에서 여성학이 강의됐습니다. 그때는 여성학 관련 서적들도 많이 눈에 띄였지요. 지금은 제2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앞서 언급했지만 저는 당시 금융권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현재로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성차별적인 현실과 성희롱 등을 감내하면서 사회생활을 견뎌야 하는 시절을 겪었습니다. 또한 결혼을 하면서 더욱 차별적 현실을 느끼게 되던 때에 여성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 같습니다.

 

4. 숙명의 여성학 전공이 지금의 선배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그리고 현재 진출하신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서 밝혔듯이 저는 여성학 전공 이후 예전과 매우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금융권에서 관심 없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임금수준이 높다고 해도 일로 인한 만족도가 낮고 자존감이 떨어졌었습니다. 여성학은 제가 필요를 느껴서 입문하게 됐고 제 관심과 신념이 맞는 직업까지 갖게 돼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능력은 무족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쓰는 일도 너무 재미있구요.

예컨대 사업 추진의 근거가 되는 법령에 대해 젠더 관점으로 검토하고 개선의견을 제시했는데 제 의견이 반영되어 제도가 개선되면 여성학 전공자로서 큰 보람을 느끼게 되죠. 충북에 재직할 때는 여성정책 연구팀장으로 일을 했는데 정책 연구를 통해 사업의 성차별적인 부분을 드러내고 개선하는 일, 여성 칼럼을 통해 인식개선을 하는 일 등 여성학을 전공함으로 인해 얻게 된 젠더관점과 감수성이 제도와 인식의 개선을 조금이라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느끼는 자긍심이 컸습니다.

 

5. 선배님 외에도 우리대학의 여성학을 전공하신 다른 동기·선후배 선배님들의 경우 어떤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신가요? 혹시 알고 계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숙명여대에는 여성학 박사과정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많은 여성학 전공자들이 저와 같이 지자체나 정부, 그리고 지자체의 여성정책 연구기관에서 활발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가족부에서 정책의 성평등 제고를 위해 정부 및 전국 지자체, 교육청의 정책에 대해 성별영향평가 제도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는데 성별영향평가는 젠더 관점이 필요한 업무이기 때문에 여성학 전공자들을 컨설턴트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스개소리로 여성학을 전공하면 굶어죽지는 않는다(일자리는 어디든 있다)’라는 말들을 할 정도로 여성학 전공자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습니다. 지금은 일부 지자체와 경찰청, 보건복지부, 대검찰청,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일부 부처에서만 민간 젠더 전문가를 활용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부처와 지방정부에서 젠더전문가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여성학 전공자들의 할 일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6.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학문으로서 여성학의 필요성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되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우리가 전공으로 여성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성학은 실천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실천을 배제한 학문으로서의 여성학은 존재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상만 파악하는 학문이 진정 학문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이 질문은 다제학적 학문으로서의 여성학에 대한 의문으로 생각됩니다. 꼭 여성학을 할 필요는 없겠지요. 지금 활동하고 계신 페미니스트 학자들 중에서도 전공으로 여성학만을 하신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법여성학과 같이 법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 고유의 학문에 페미니즘 관점을 적용해 공부한 경우가 더 많지요. 그러나 현재 젠더전문가의 수요를 생각한다면 우리대학에서 석사과정에 여성학을 개설하고 여성연구자를 양성하는 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 여성학 연계전공을 희망하고 있는 숙명인들에게 한 마디 말씀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여성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것은 모든 성의 인권과 행복권을 추구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기에 현재 젊은 층에서 젠더 갈등이 첨여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습니다. 또 페미니즘이 젠더갈등, 젠더혐오와 연계되어 곡해되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제가 여성학 박사이기는 하지만 요즘 세대의 젠더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인지도 모르겠지요. 여러분들이 가진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제를 공부해보기를 바라며 연계 전공 후 사회를 보다 평등하게 변화시키는데 일조하시는 후배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