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학 111주년 기획 인터뷰 시리즈 [르네상스 숙명, 길을 묻다] - ⑧ 정희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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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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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전 세계를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씨가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된 것. 국내외 언론이 이 사건을 주요 속보로 타진하면서 가장 주목한 건 ‘과연 어떤 독극물이 암살에 쓰였냐’라는 것이었다.

    

당시 한 국내 언론이 해외 유수의 독극물연구센터에 연락해 전문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들로부터 “너희 한국에 최고 권위의 국제법독성학회 회장이 있으니 연락해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해외 전문가들이 말한 인물은 바로 우리대학 약대를 졸업한 정희선 충남대 분석기술과학대학원장(약학78졸)이다.

    

정희선 동문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197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입사 당시 ‘3년만 버텨라’는 말을 들었던 정 동문은 34년간 재직하며 최초의 여성 국과수 소장과 초대 원장을 맡았다. 2014년엔 한국여성 최초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수여하는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을 받았으며 국제법과학회, 국제법독성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언론과 교내 소식지, 홍보동영상을 통해 많이 소개된 정 동문을 다시 인터뷰한 이유는 간단하다. 르네상스 숙명 기획인터뷰가 추구하는 미래의 핵심가치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대표적인 롤모델이기 때문이다. 약 1시간 반가량 정 동문과 이형진 대외협력처장이 주고받은 대화는 무척 유쾌하면서도 깊은 메시지를 던져줬다. 이야기를 여기 소개한다.

    

이형진 대외협력처장(이하 이 처장): 정희선 동문님, 반갑습니다. 우리대학이 진행하는 창학 111주년 기획시리즈, ‘르네상스 숙명, 길을 묻다’의 대표 동문으로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매주 서울과 대전을 오고가는 바쁜 와중에 모교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주셨는데, 숙명의 구성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정희선 동문(이하 정 동문): 반갑습니다. 숙명여대 약대를 78년도에 졸업한 정희선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34년간 근무하고 나와서 현재는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대표 동문으로 소개해주셔서 송구합니다.

    



이 처장: 최초의 여성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대한민국 여성 과학자 어벤저스, 국제법독성학의 최고 권위자 등등 수식하는 말이 많습니다. 특히 당시 최고 직군 중 하나인 약사를 포기하고 국과수에 들어간 것은 대단한 도전이자 선견지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 동문: 제가 약대를 다니다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現국립과학수사연구원, 2010년 원으로 승격함)에 가겠다고 하자 처음엔 주변 사람들이 다 말렸어요. ‘거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기나 하냐, 매일 시신이 들고 나는 곳인데 여자가 버틸 수 있겠냐’라는 걱정이었죠. 환경이나 사회적 인식이 안 좋은 건 사실이었어요. 그때 당시 국과수는 지금의 서대문역 옆 경찰청 자리에 있었는데, 부검실 시설이 굉장히 열악한데다 부검을 하면 고인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가족들이 막을 정도로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 그런 말들이 잘 들리지도 않고 느끼지도 못했어요. 그냥 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제가 생각한 국과수의 매력은 직업 자체가 주는 성취감이 크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볼게요.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잡을 때 본인 옷에 묻은 미량의 혈흔에서 유전자를 분리해 여성 유전자를 찾아냈는데 경기 서남부 실종 여성 중 하나랑 일치했어요. 그 결과를 들이대니 결국 자백한거죠. 과학의 힘으로 7명의 억울한 죽음을 밝힌 겁니다.

    

과학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현상이나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아낼 때 만족감이 큰 데, 저의 연구물이 범인을 찾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규명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회의 안전, 국민의 치안에 기여한다는 직업적 소명까지 얻으니까요. 자신의 존재가치가 확 달라져요. 여기 근무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비슷한 말을 합니다.(※정희선 원장은 재임 시절 국과수의 슬로건을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으로 바꿨다-편집자 주)

    

이 처장: 반면에 미제사건에 대한 스트레스도 클 것 같습니다.

    

정 동문: 정말 엄청납니다. 제가 언론과 인터뷰할 때 가장 많이 한 얘기가 듀스 멤버 김성재 씨 사망 사건입니다. 당시 팔뚝에 난 주사바늘 자국을 보고 금방 사인을 규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백종류의 마약검사를 해도 일치하는 게 없는 거에요. 그때부터 ‘도대체 왜 못 찾을까’ 스스로 질책하고 꿈에까지 나타나 잠도 못 잘 지경이 됐죠. 한 직원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자기 꿈에도 원장님이 나타나 ‘왜 못 찾냐’고 질책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결국 13만종에 이르는 화합물을 다 뒤져낸 끝에 동물마취제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사건은 영구미제로 종결됐습니다. 지금도 그게 마음에 늘 남아있어요.

    

이 처장: 남성 중심적 조직에서 받을 수 있는 성차별이나 불이익이 당시에는 만만치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정 동문: 처음 국과수에 가서 8개월 간 비이커같은 실험도구만 닦았죠. 커피심부름도 너무 하기 싫었고요. 참고 참다가 용기내어 상사에게 진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가짜 꿀을 판별하는 업무를 줬어요. 정말 열심히 했죠. 그때 경찰에서 가짜꿀을 만들어 파는 업자를 잡았는데 제 실험결과가 큰 도움이 됐다고 해서 KBS뉴스에서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 내가 하는 일이 이런거구나’라고 느끼고 본격적으로 국과수에 대한 매력이 생겼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계속 물먹은 적도 있죠. 입사한 지 10년 쯤 지나서 두 번 연속으로 승진을 못했는데, 일은 잘 한다고 칭찬하면서 자꾸 떨어지니까 ‘이 조직에서는 내가 필요없으니 그만둬야 하나’하고 심각히 고민했죠. 그런데 그때 제가 마약분석과에 있으면서 소변으로 마약을 검출하는 실험법을 만들었을 때라서 정말 바빴어요. 출근하면 전국의 소변이 다 저한테 와서 쌓여 있었으니까요.(웃음) 오늘까지만 일하고 내일 사표내자 했는데 바빠서 결국 못 냈어요.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승진도 잘 되고 일이 술술 풀렸어요.

    

상대적으로, 제가 여성이라서 득을 본 것도 있다고 봐요. 국과수 숙원 과제가 원으로의 승격이었는데 작은 여성이 맨날 열심히 여기저기 다니며 주장하니까 아무래도 더 들어준 측면이 있죠. 덕분에 최초의 국과수 원장도 됐습니다.

    



이 처장: 정 동문님은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정 동문: 대학 다닐 때는 굉장히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공부만 열심히 했죠. 그런데 동아리 활동은 참 열심히 한 걸로 기억해요. 2학년 말에 청소년적십자 RCY 동아리가 생겼는데 거기서 2대 회장을 맡았죠. 학도호국단에선 부사단장도 했고요. 동기들하고도 잘 지내고 선후배 관계 열심히 챙겼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어요. 제가 사회생활하면서 느낀 건 실력과 더불어 어울리는 힘이 있어야 오래 갈 수 있다는 거에요. 굉장히 중요하죠.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꼭 강조하는 것이 대학 때 동아리 활동 열심히 하라는 거죠.

    

이 처장: 요즘은 학생들이 취업준비로 바빠서 동아리 활동마저 포기한다고 합니다.

    

정 동문: 전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 배워야 할 것이 따로 있죠. 저희 때는 농촌봉사활동을 자주 가면서 함께 고생하는 경험을 공유했죠. 서로 지켜야 할 것, 서로 배려해야 할 것 등등 다 여기서 배웠어요. 그건 누가 가르쳐줄 수 없어요. 상황에 놓여졌을 때 스스로 깨닫는 거죠. 멀리 보면 그런 경험이 훨씬 중요한 스펙이 되요.

    

이 처장: 원래 약사가 되려다 독극물 분석가로 진로를 바꾸신 것도 그런 경험 덕분인가요?

    

정 동문: 약사는 참 좋은 직업이에요. 안정적이면서 어느 정도 수입도 보장되죠. 특히나 제가 학교 다니 7~80년대에는 약사의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어요. 약사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부자가 됐더라고요.(웃음)

    

그러고보면 저는 대학 때 들은 특강 하나로 인해 인생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대학 3학년 때 오수창 당시 국과수 소장의 특강을 들었는데 ‘어, 저거다. 저렇게 멋있는 일이 있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죠. 웃긴 건 20년이 지나서 대학 친구들을 만났더니 다들 그런 강연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을 못하는 거에요. 그걸 보면서 ‘야, 이게 갈 사람은 운명적으로 정해져있구나’라고 느꼈죠.

    

진로를 알고도 선택하지 않는 건 상관없어요. 그런데 아예 몰라서 선택하지 못하는 건 정말 안타까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강연을 여러 군데 다니고 여학생들에게 조언을 많이 해요. 본인의 꿈을 잘 키우라고요. 주로 여고생, 여대생들이 저한테 편지나 메일을 많이 보내는데, 최대한 답변을 다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처장: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여성 교육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우리대학도 젠더혁신센터를 신설해 젠더이슈를 반영한 교육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원장님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정 동문: 예전에 며칠에 걸쳐서 손으로 하던 분석 작업은 이젠 기계가 다 합니다. 그런데 그 성능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해서 10만종의 화합물을 분석하는 것도 금방 끝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매뉴얼대로 하는 대부분의 일을 기계가 대체하게 될 텐데 우리에게 남는 건 뭘까요?

    

과학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게 해석의 영역이에요. 어떤 데이터를 보고 무엇과 연결할지, 어떻게 활용하지 정하는 거죠. 전 여기에 여성이 가진 섬세함이 큰 강점을 가질 거라고 봐요. 힘을 들이는 육체노동이 점점 사라지는 대신 빅데이터를 가지고 해석을 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니까요. 또한 기계가 해줄 수 없는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여성이 강점을 가지죠.

    

이 처장: 실제로 과학분야에 여성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정 동문: 국과수에도 여성이 많아졌어요. 숙대 후배만 4~5명 되더라고요. 점차 비율은 늘겠죠.

    

이 처장: 그런데 아직은 여성이 커리어를 이어나가는게 쉽지 않습니다.

    

정 동문: 어떤 사회에서건 자신의 일에 애정이 있으면 계속 도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애정이 생기려면 시간이 필요하죠. 많은 여성들이 육아 등의 문제로 이 시간을 못 버티는데 이런 환경적 제약은 국가에서 꼭 해결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제가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유연성이에요. 어느 순간을 참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를 봤는데, 그때는 한 단계 뒤로 물러서서 차분히 보라고 조언해요. 예를 들어 ‘상사가 어떤 지시를 했을 때 바로 면전에서 안 된다고 하지마라, 안 되는 거 알지만 얘기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테니 검토해보겠다고 하고 대안까지 준비해서 다음날 얘기한다면 얼마나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하겠나’라고 말하죠. 즉각적으로 가능성을 닫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어요.

    

하나 더 추가하자면 양보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과장까지는 본인의 실력으로 올라갈 수 있어도 그 위로 올라가려면 인성이나 덕이 필요합니다. 아까 동아리 활동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인데, 같은 조직의 사람들과 공생하는 법을 대학 단계에서 미리 배워서 오래오래 재능을 발휘하는 인재가 됐으면 합니다.

    



이 처장: 그러면 우리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정 동문: 우리대학 학생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적극성이 좀 덜하죠. 저는 학교가 자기 자신을 근사하게 소개하고 자랑하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줬으면 좋겠어요. 수업에서 학생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때론 교만하다고 여길 정도로 자랑해보라고 시키기도 하고요. 그런 훈련을 통해 자기애나 자존감도 높아진다고 봐요. 평범하게 말하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도 알려줬으면 해요. 국과수 같은 기관에도 꼭 약대가 아니라 다른 전공이 올 수 있거든요. 예컨대 물리학을 전공하면 건물이나 다리가 왜 무너지는지 분석하는 분야로 연구하고, 교통사고 원인을 찾아내는 일을 맡을 수 있겠죠. 사회심리학을 전공하면 거짓말탐지나 프로파일러로 활동할 수 있고요. 정말 다양한 전공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 학교가 적극 나서서 알려주고, 또 저같은 선배들이 많이 생기면 취업의 다양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 처장: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해줄 희망의 메시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 동문: 제가 학창시절 제일 존경하던 교수님이 독문과 이귀경 교수님이신데, 어느 날 1학년 학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러분이 지금 와 있는 자리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야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요.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들, 늘 불안한 마음에 미래를 걱정하죠. 그런데 그 걱정하는 일이 실제로 얼만큼 일어나는지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2%도 채 안된다고 해요.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죠. 그보다 현재가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최선을 다하면 미래로 나가는 힘이 생기죠.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당면과제에 집중하세요. 내 전공이 맞을까 안 맞을까 걱정하는 것보다 한번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아닐 경우 대학원에 진학해서 다른 것을 전공해도 되지 않습니까.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경영을 배우면 그야말로 우리 시대에 더욱 필요한 융합형 인재가 되지 않을까요? 시간을 소모적으로 보내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 희망과 가능성이 생긴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이 처장: 오늘 귀한 시간 함께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