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을 모아 따뜻한 이야기로 탄생시키다, 그림책 작가 민승지 동문
INTERVIEW
1762
2023.04.06
http://pr.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94100/artclView.do?layout=unknown

"내가 만약 냉장고에 방치된 파프리카라면?" 어쩌면 허무맹랑해 보이는 작은 생각들을 모아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그림책으로 만드는 작가가 있다. 우리대학 졸업 전시를 계기로 그림책 작가 생활을 시작한 민승지 동문(시각·영상디자인과 10)이다.

평범한 사물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그는 사소한 일상도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가다. 자신만의 글과 그림을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민 동문의 이야기를 숙명통신원이 들어보았다.


 

1.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쓰고 그리는 작가 민승지입니다. 숙명여대에서 시각·영상디자인과를 전공했고 현재는 주로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리네 찜질방>, <제법 빵빵한 날들>을 쓰고 그렸고, <식혜>, <티나의 종이집>, <매일 보리와>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느리고 오래된 것들,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민승지 작가의 <농부의 어떤 날>에 담긴 그림(일러스트)

 

2. 농부 가족의 일상과 농작물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농부의 어떤 날>을 독립출판으로 출간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어요. 이 책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처음 마음먹은 계기는 대학 수업 시간에 작업한 콜라주였어요. 비록 손바닥만한 크기였지만 우연히 완성한 한 장면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것을 시작으로 작은 에피소드를 떠올리고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직접 인쇄소에 가서 인쇄 작업을 했어요. 한 장씩 재단한 후 실로 종이를 엮어서 만든, 아주 작고 얇은 책의 형태였습니다. 그렇게 30-40권씩 소량으로 만든 책들을 독립 서점에 입고하고 마켓에 참가하며 판매하다가 <네이버 그라폴리오 책그림전>에 당선됐고, 지금의 노란상상이라는 출판사를 만나 양산 출판을 하게 됐습니다.

 

3. 동문님의 다른 작품인 <오리네 찜질방>, <검은 머리 흰머리>, <식혜> 등을 보면 평범한 사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요. 사물을 의인화한 작품을 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바로 제 입으로 말하기가 쑥스러울 때가 많은데요. 그럴 때마다 사물의 입을 빌리는 것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구상 단계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의인화예요. ‘내가 만약 브로콜리라면?', '내가 만약 냉장고에 방치된 파프리카라면?’과 같이 일상 속 사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곤 해요. 그러면 발생하게 될 문제 상황과 느끼게 될 감정, 떠올리게 될 해결 방안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떠오르고, 그것들이 모여 곧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나 동물, 식물, 심지어 사물에 감정을 이입해 보는 것은 작가 민승지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사람 민승지가 살아가는 데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민승지 작가의 <오리네 찜질방>에 담긴 그림(일러스트)

 

4. <티나의 종이집>, <매일 보리와>는 그림 작가로만 참여했어요. 보통 저자와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떻게 협업하나요?

 

제가 SNS에 게시한 그림이나 작업했던 책을 본 출판사 측에서 연락을 주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원고 내용이나 출간 일정 등에 대한 계약 내용을 협의하고, 최종 계약을 하게 되면 예정된 일정에 맞춰 작업을 진행합니다. 러프 스케치를 거쳐 스케치를 완성하고, 채색 샘플 제작 후 채색 작업에 들어가요. 내지까지 완성하면 표지를 만들고 최종 마감을 합니다. 과정 중간중간 편집자님, 디자이너님, 글 작가님과 틈틈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수정을 거쳐 작업하기에, 혼자서 작업하는 그림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민승지 작가의 러프 스케치

 

5. 동문님은 평소 일상의 어떤 순간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소재를 발견하나요?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을 놓치지 않고자 항상 주위를 살펴보고 메모합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 초등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멈추어 나누는 이야기, 전날 밤에 다려놓은 셔츠, 먹다 남긴 조각 케이크 같은 거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러한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습니다.

 

6. 동문님은 생각하는 그림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나만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림책의 매력인 것 같아요.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주변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심적으로 힘들었고,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을지 생각하며 방황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중 졸업 전시를 준비하며 일러스트 수업을 들었고, 처음으로 여러 에피소드를 구상하여 그림책으로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그림책의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에도 어떠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음을 알게 됐고,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는지’보다는 ‘나만의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후부터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을 수 있는 그림책의 매력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면서 작가로서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김개미 작가()와 민승지 작가(그림)<티나의 종이집>

 

7.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동화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는데 특별히 수채화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수채화는 저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사용하기 간편한 자료라서 자연스레 손이 많이 갔어요. 대학 시절에는 주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작업했는데, 그러다 문득 작품을 접하는 누구라도 ‘나도 따라 그려볼 만하겠다’고 느낄 만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 다른 작업 방식을 이용해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찾아낸 방법이 수채화였고 지금까지도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활용하다 보니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것을 금방 그려낼 수 있고 물과 물감의 농도 번짐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8. 최근에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엄마로서 역할과 작가로서 역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나요?

 

사실 아직은 육아에 치중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아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이때뿐이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작업량을 많이 줄였습니다. 육아 퇴근(아이가 잠들면 그제야 육아에서 놓여남을 퇴근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후에 시간을 내어 작업을 했기에 처음에는 조바심이 많이 났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작업 시간이 제한된 대신 일을 더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1~2시간밖에 작업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매일매일 꾸준히 작업하다 보면 어느새 책 하나를 완성할 수 있더라고요. 아직은 일과 생활의 균형이 완벽하게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육아뿐만 아니라 저 자신도 함께 챙기면서 균형을 잡는 것이 앞으로 제가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민승지 작가의 <제법 빵빵한 날들>

 

9. 앞으로 어떤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저는 주로 일상생활 속에서 영감을 얻다 보니 일상에서 얻은 경험이나 느낀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이 아주 작고 사소한 감정일지라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잘 어루만져 작품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림책을 접한 독자들이 책을 읽는 동안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안도할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고 싶어요.

 

10. 지금의 민승지를 만든 숙명에서의 경험은 무엇인가요?

 

찬찬히 돌아보니 숙명에서 크고 작은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이끌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졸업 전시 반에서 이지선 교수님의 일러스트 수업과 김승연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것이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숙명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작업하며 졸업을 준비한 시간이 저를 발전하게 했던 지점인 동시에 대학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에요. 숙명에서 좋은 교수님들과 학우들을 만난 것은 제 인생에서 큰 행운이었습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21기 김수민(한국어문학부22), 최예은(중어중문학부21)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