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목소리로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소프라노’ 서활란 동문을 만나다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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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http://pr.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9901/artclView.do?layout=unknown

우리대학 음대 성악과를 수석 졸업하고 같은 해 이탈리아 로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입학, 5년 후 조수미 이후 처음으로 10점 만점으로 수석 졸업. 그리고 스위스 제네바 국립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수석 졸업과 제네바 콩쿨 우승까지. 우리대학 서활란 동문(성악96)은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한국의 대표 성악가로서 국내외 주요 오페라에서 주연을 맡아 아름다운 목소리로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안겨주고 있는 그를 숙명통신원이 만났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숙명여대 성악과 92학번 소프라노 서활란입니다. 현재는 주로 공연을 많이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안양 세계태권도한마당에 초청돼 약 6천여 명 앞에서 공연을 했어요.

 

-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면서 노래를 시작했어요. 피아노는 유치원을 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우연히 초등학생 때 TV에서 한국인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던 팝페라 가수 키메라의 내한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당시 화려한 분장을 한 키메라가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부르는 걸 보고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죠. 그 공연에 매료된 저는 오페라가수가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원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했고,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싶었거든요.

 

- 학교에 다니실 때 동문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얌전한 학생이었어요. 그 당시 친구들이 미팅을 하러 나갈 때 저는 연습에 충실했죠. 너무 모범생인가요?(웃음) 그래서 수석으로 졸업하게 됐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은 우리대학 선배이시자 은사님이신 신명자 선생님이에요. 제가 학생일 때 저를 많이 아껴주셨고,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게 가르쳐주신 덕분에 지금껏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58회 제네바 콩쿨에서 청중상, 스위스작곡가상, 스위스시계 브레게상을 수상하셨는데 해외 유수의 콩쿨들을 준비한 과정과 소감을 간단하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네바 콩쿨은 권위 있는 국제 콩쿨로 매년 1회 개최되며 분야는 피아노·성악·현악 등을 주로 하지만, 일정하지 않고 연도에 따라 종목이 달라요. 그래서 성악은 4년에 한 번 참가할 수 있는 셈이죠. 이처럼 돌아오는 시기가 길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준비하는 콩쿨이에요. 게다가 일반 콩쿨은 5곡 정도만 준비하면 되는데, 제네바 콩쿨은 20곡 정도를 준비해야 해요. 또한 예선과 준결승, 결승까지 세 번의 과정을 거치는 일반 콩쿨과 달리 한 번의 예선이 추가되어 총 네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해서 확실히 부담이 많이 되는 콩쿨이었죠. 제가 운 좋게 우승을 하게 되어서 정말 큰 영광이었어요. 특히 스위스시계 브레게상이 제일 값진 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부상으로 뛰어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제 노래가 담긴 CD를 만들어주었거든요. 한 명만 받는 상인데 제가 받게 되어 정말 기뻤죠. 제네바 콩쿨 이후 제가 유럽에서 주목 받으면서 오페라와 초청독창회를 많이 하게 되었어요.

특히 심사위원 중 한 분이셨던 세계적인 소프라노 존 서덜랜드(Joan Sutherland)가 제게 청중을 매료시키는 목소리와 아름다운 무대 매너를 갖췄다라고 극찬을 해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기억에 남아요.

 


 

- 얼마 전에도 콘서트 독창회를 무사히 마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트엠콘서트에서 성악 공연은 1년에 한 번 진행되는데요, 오시는 관객들이 다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세요. 제가 하는 음악을 다 아시는 분들이죠. 그래서 노래하기도 편했고, 청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즐거운 공연이었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독창회를 해왔지만, 그럼에도 독창회는 혼자서 오랜 시간 노래를 불러야 할 뿐만 아니라 공연장의 분위기를 푸는 것까지 제 몫이기 때문에 큰 무대보다 오히려 힘든 점이 많아요. 그렇지만 열심히 준비했고, 성공리에 공연을 마칠 수 있었어요. 관객들도 굉장히 행복해하셔서 뿌듯했고, 가까운 곳에서 청중을 만날 수 있어 저에게도 청중들께도 즐거운 공연이 된 것 같아요.

 


 

- 수많은 공연을 하시면서 혹시 기억에 남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2014년 예술의 전당에서 선보인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천생연분>은 이후 싱가폴, 터키, 홍콩 등 세계무대로 나아가 많은 나라에서 공연을 했어요. 저도 재작년 <천생연분> 공연을 위해 홍콩에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제가 감기에 걸렸어요. 원래 저는 감기가 걸려도 소리는 잘 났는데, 감기가 심하게 들어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정도였어요. 주인공인 제가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연주가 안 되기 때문에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죠. 지휘자와 연출자 분들이 배려해주셔서 저는 모든 리허설을 취소하고 홍콩의 병원에 가서 특효약을 받아왔어요. 이틀 동안 밖을 나가지도 않고 푹 쉬었죠. 다행히 공연 당일 목소리가 딱 나왔어요. 나라를 대표하여 공연을 하러 온 제가 소리가 안 나와 큰 걱정을 했었는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그리고 저 때문에 원활하게 리허설을 진행하지 못해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죠. 함께 간 사람들이 제가 쾌유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셨는데, 그 덕분에 노래를 할 수 있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 지금까지 성악가의 길을 걸어오시면서 가장 힘들었을 시기는 언제이며, 어떻게 그 어려움을 극복하셨는지요?

 

성악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어요. 성악으로 인한 힘든 점은 없었지만 그래도 굳이 꼽자면 유학 시절이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96년에 유학을 갔는데, 97년 말에 IMF가 터졌어요. 그래서 많은 유학생들이 환율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죠. 그 당시 저는 한창 공부를 하고 있어서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보내주는 돈의 가치가 4분의 1로 떨어졌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를 했답니다.

 

- 동문님께 성악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에게 성악은 기쁨이자 행복이에요. 노래를 할 때마다 기쁘고, 너무 행복해요. 그리고 그 노래를 통해서 듣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 더 기쁘죠. 앞으로도 제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달해 그들을 더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먼 훗날 기쁨과 위로를 줬던, 사랑받는 성악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동문님을 따라 음악계의 길을 걸어가게 될 숙명인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음악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타고난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이 있죠.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더군다나 듣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음악인데, 훨씬 더 즐기는 자세로 임해야 하지 않겠어요?

또한 성악이라는 것을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정말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자신의 성공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평생을 함께할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그 누구보다 즐기는 자세로 음악에 임할 수 있을 거예요. 음악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함께하는 자랑스러운 숙명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취재: 숙명통신원 16기 임솔 (미디어학부16)

정리: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