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우리를 찾아가요” 설치미술 작가 송지형 동문 인터뷰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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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7
http://pr.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11814/artclView.do?layout=unknown

예술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아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도 자유롭고 독립적인 형태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예술 안에서 자신만의 생각과 목소리를 표현하는 우리 동문이 있다. 바로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송지형 작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송 작가는 최근 우리대학 박물관에서 막을 내린 <공존:전통과 현대의 담론>전시전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담은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했다. 전시전 참여로 일시 귀국한 그를 숙명통신원이 만나봤다.

 


송지형 작가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송지형(회화09)입니다.

 

2. 얼마 전 끝난 우리대학 박물관 전시전에 참여하셨습니다. 어떤 작품으로 함께 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공존: 전통과 현대의 담론>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고 한국대학박물관협회에서 주관하여 숙명여대 박물관과 문신미술관이 선보이는 전시에요. ‘전통의 담론-삶의 기원현대의 담론-이방인의 메아리라는 두 가지 주제로 열렸는데 저는 난민 예술가, 해외 거주 한국작가, 한국계 외국 국적의 작가 등 10인의 다양한 작가들이 함께 현대의 담론-이방인의 메아리파트에 참여했습니다. ‘이방인의 메아리라는 명제는 난민 예술가들의 삶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갖고 있는데요, 난민에 대한 이슈는 현재 제가 거주하고 있는 독일, 유럽 내에서도 사회, 문화.예술, 교육분야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다뤄지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예술이 갖고 있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동시대의 사회 이슈를 토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아직 난민이라는 이슈가 어색한 우리나라에서 이번 전시는 큰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제 작품의 제목은 Dominant eye 2019 라고 해요. 는 한국어로 우세안이라고 하는데, 두 눈 중 총이나 화살을 쏠 때 주로 의존하는 눈을 뜻해요. 이 작품은 캐스팅 기법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사냥총이 공중에 설치되어 있어요. 사냥은 과거 인간에게 필수 행위였지만, 현재는 인간의 유희를 위한 스포츠잖아요. 이 지점이 굉장히 기이하다고 느꼈는데, ‘사실 나의 예술도 이러한 지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성찰적인 작품이에요.


Dominant eye 2019 사진: 한정엽(한국문화재사진연구소)

 


<공존전통과 현대의 담론> 전시전 뮤지엄토크에 참여한 송지형 작가

 

3.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미술대학교에 어떤 계기로 가셨나요?

 

학부 시절에는 회화를 전공했어요. 그 때도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당시 저희 과 교수님이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셨는데, 교수님도 전공에 맞춰 회화만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걸 지지해 주셨어요. 실제로 이것저것 해보니 더 공부하고 싶었고 그래서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어렸을 때 독일에서 살던 경험도 있고, 교수님도 독일에서 공부를 하셨던 점이 저에게는 독일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게 되었어요.

독일은 한국이나 미국식 학제 시스템과 달리 도제식 시스템이에요. 한 교수님 밑에서 오랫동안 작업을 하고 연구하는 시스템이라 자신과 잘 맞는 교수님을 만나는 게 중요해요. 장소 특정적 설치 예술의 권위자인 그레고르 슈나이더 교수님이 뒤셀도르프 국립미술대학교에 첫 부임하셨을 때 교수님의 첫 제자가 되었고 그 밑에서 수학했어요.

 

4. 독일 유학 생활에서 얻게 된 것은 무엇인지, 또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유학 생활 중 배운 가장 중요한 가치는 주체적인 삶이에요. 독일에 가서 난생 처음 인종과 성별 때문에 차별이란 것을 겪었어요.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유럽 내에서 저는 타인에게 아시아 여성으로 인지됐지요. 유럽에 사는 동안 먼지차별(microaggresion먼지처럼 작지만 차별이 되는 말과 행동)부터 대놓고 하는 인종차별까지 이방인이 겪는 배타를 경험했어요. 이러한 차별은 저에게 철저한 외로움을 가져다 주었지만, 반대로 차별 받는 이들에 대한 이해와 연대의식을 갖게 해주었어요. 또한 저는 이 시간속에서 더 강해졌고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어요.

 


독일 현지신문(west deutsche zeitung)에 실린 송 작가 인터뷰



 

5. 장소 특정적 관객 참여형 설치작업이 정확하게 어떤 종류의 미술활동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장소와 작업이 얼마나 잘 호흡할 수 있는지를 중시하는 것을 장소 특정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전시공간 안에 작품을 수동적으로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닌 작품이 전시될 공간 안에 어떻게 녹아들고 호흡하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지요. 관객 참여형이란 관객이 작품을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작품의 일부가 되고 참여자가 되며 작업의 퍼포머까지도 될 수 있는 예술의 형태라고 생각해요.

제 작업 안에서 이러한 특성들을 잘 보여주는 작업은 독일 KIT(Kunst im Tunnel)에서 전시한  2019입니다. 영어로 ‘Do you feel me?’너 내 말 알아듣겠어?’ ‘내 말이 무슨 소린지 알아?’라는 뜻이에요. 작품 제목을 통해 제가 관객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소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노출 콘크리트 건축구조로 되어있는 전시공간 안에 파란색으로 도색한 비계(건설, 건축 등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가설 발판 혹은 가시설물)를 설치했어요. 총 높이 3미터가 되는 비계는 낚시터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빙어낚시가 모티브인 이 낚시터에서 관람객들은 제가 6개월 동안 수작업으로 제작한 물고기 조형물을 낚을 수 있었어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물고기를 걸어주는 사람이 또 다른 관람객이라는 거예요. , 이 작업 안에는 수증자와 증여자가 동시에 존재하고 수증자와 증여자가 소통됐을 때 제 물고기가 누군가에게 선물되는 것이지요.

 

6. 작품 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사회 내에서 내가 작가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예술은 사회 내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요. 그러기에 저에게 작품의 주제의식 연구과정은 굉장히 중요해요. 당연히 무엇을 작품에 담아내고 이를 관람객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중시해요.

제 작업들의 뿌리가 되는 주제의식인 인간의 이타성왜 인간은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인가?” “이 행위는 인류의 진화에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가?”라는 인류학적이고 철학적인 관심에서 시작됐어요. 그리고 이 이타성은 우리나라 문화의 중요한 정서인 호혜성, 상부상조, 공동체, 달램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죠. 최근에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어가 <증여론>(1923-4)에서 처음 언급한 증여를 시작으로 선물 경제 등에 대한 주제의식으로 관심을 확장하여 연구하고 있어요.

 

7. 여러 작품 활동들을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작품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관람객을 만나는 매 순간이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관람객들이 제 작품 안에서 온전히 나 자신을 발견하거나 사유할 때 감동을 느낍니다. 세 가지 정도의 인상적인 순간들이 기억나는데요.

작업(Quiet in the Tea Garden) 2018은 관람객들이 전시장 안에서 차()를 마시면서 명상을 하고 휴식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든 작업이에요. 이 공간에서 저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1:1 다도(茶道) 퍼포먼스를 선보였어요. 이 작업은 우리나라의 다도, 좌식문화와 유럽의 차() 문화가 결합한 작업이었고, 제 작업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관람객들은 모두 신을 벗고 들어와야 했어요. 독일 사람들에게는 외부에서 신을 벗는 것은 굉장히 낯선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은 제 작업 안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명상을 하며 휴식을 취했어요. 관람객은 이 작업 안에서 휴식이라는 관람형태를 취했으며 작업의 일부가 되었어요.

작업 Do you feel me 2019는 관람객들이 낚시를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작품 감상법과 달리 최소 30분에서 1시간 정도 제 작업 안에서 머물러야 했어요. 예술작품을 30분 이상 감상하고 참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많은 관람객들이 이 작업에 참여했죠. 그중 미국에서 온 아시아계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1시간가량 낚시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저에게 어렸을 적 아버지와 낚시하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다고 말하더군요. 그 순간 작업을 하기 참 잘했다고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으로 Saju - fortune telling 2018이라는 작업은 관람객들의 사주를 제가 직접 봐주는 퍼포먼스였어요. 우리나라는 사주가 아주 익숙하지만, 독일에서는 매우 생경한 문화예요. 제가 사주를 직접 봐준 것은 아니고(웃음) 컴퓨터에 생년월일과 시간을 입력한 결과를 통역해 주는 방식으로 퍼포먼스를 진행했어요. 사주를 봐준 후에는 부적과 흡사한 모습을 한 드로잉을 선물로 주었어요. 그리고 제 홈페이지에 이 작업과 관련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보낼 수 있도록 온라인 창을 만들었어요. 몇몇 관람객들은 이 온라인 창구를 통해 저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그중 제가 그려준 부적을 자신의 집에 걸어 놨으며 당신이 해준 말들이 나의 마음 안에 남았다고 연락한 관람객이 있었는데, 내 작업이 누군가에게 와 닿았다는 느낌을 받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Ruhe im Teegarten (Quiet in the Tea Garden) 2018 

 


Saju-fortune telling 2018


 

Do you Feel Me, 2019, 사진 Ivo Faver

 

8. 향후 목표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선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한국과 독일에서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그 다음 한국 작가로서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서는 것이에요. 해외에서 작업하고 거주하다 보니 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들여다보게 됐어요. 한국이라는 정체성은 제 자신 자체이자 제 작업의 뿌리이며 모티브이에요.

 

9. 예술계 쪽으로 진로를 희망하거나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작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작업을 하는, 혹은 하려는 후배 님들께 용기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우선 어떠한 작가관을 가질 것인지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를 위해 연구를 많이 해야 해요. 미술사조, 작가 연구, 작품 연구 등 다방면에서 공부를 해야 해요. 그 방식은 꼭 이론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구하는 습관, 방식을 만들면 좋을 듯해요.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위기가 왔을 때 이를 유연하게 이겨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잘 위로하는 법, 나를 챙기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취재: 숙명통신원 18기 김지후(사회심리학과 18), 19기 부지예(한국어문학부 20)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