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유튜브 채널 진행자에서 신춘문예 작가까지, 멀티 출판인 김화진 동문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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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2
http://pr.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33520/artclView.do?layout=unknown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만큼 보람찬 일이 있을까. 학교 도서관에서 한국문학과 해외 문학을 즐겨보던 김화진 동문은 이제 출판사 민음사의 편집자로서 아직 어디에도 선보인 적 없는 이야기들을 작가와 함께 만들어 내고 있다. 그녀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 TV’에서 진행자로도 맹활약하는 멀티 출판인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그녀의 단편소설 <나주에 대하여>가 당선되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책과 독자들을 이어주던 김화진 동문은 작가로서도 이야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책 한 권에서 비롯되는 멀고 미약한 힘을 기대한다고 말하는 김화진 동문의 이야기를 숙명통신원이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1.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화진입니다. 한국어문학부 11학번으로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출판사 민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와 한국문학 단행본을 출간하는 팀에 소속되어 있어요. 최진영 작가님의 <해가 지는 곳으로>, 조해진 작가님의 <단순한 진심>, 김세희 작가님의 <항구의 사랑> 등을 편집했습니다. 2021년에는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습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2. 2021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어떠한 계기로 당선작인 <나주에 대하여>를 쓰게 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종종 해 보곤 하는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애인의 전 여자친구, 혹은 전 애인의 전 여자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어쩐지 싫어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이고 그것은 일종의 공통점이니까. 우리는 대체로 학연이나 지연처럼 공통점에 약한 존재들이니까. 이상하게 친한 척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상상에서 시작된 소설입니다.

 

저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이 궁금했습니다. 거기에 세트로, 마음만으로는 마음처럼 안되는 관계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그런 종류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좋아하고 미워하고, 좋아하면서 멀어지고 미워하면서 붙어 있게 되는지, 그런 것을 생각하다가 <나주에 대하여>를 쓰게 되었습니다.

 

80매 내외의 분량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 먹었을 때, 친구들과 작은 모임을 했었습니다. 그때 저희의 (최선을 다했지만, 터무니없이 어설펐을) 습작을 읽은 뒤 최시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소설 못 쓴다, 하는 말이었는데요. 이상하게 그 말이 힘이 됐습니다. 마음껏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도 좋다는 말처럼 들려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3. 한국문학 편집자이자 작가신데, 글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출간 전, 내가 지금 편집하며 읽고 있는 이 원고가 아직 세상 어디에도 없는 원고라고 생각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것 외에도 출판사에서 일하면 크고 작은 보람이 있습니다만, 글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느끼는 보람이라고 했을 때는 역시 근본적인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어디에도 선보인 적 없는 이야기를 작가와 함께 뚝딱뚝딱 만들고 있고, 아직 세상은 그 사실을 모르고, 책이 나오면 어떤 사람들이 처음 읽게 되고, 그러고는 시간이 흘러 도서관에 구간 도서로 꽂혀 있다가도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을 들른 사람에게 처음읽히게 된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로 길고 아름다운 이야기 같습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게 기쁩니다.

 

4. 유튜브 채널 민음사 TV에서도 진행을 맡고 계십니다. 책을 영상매체로 권하는 역할을 맡으신 셈인데요. 책을 만드는 제작자로서 어떤 효과를 기대하고 계신가요?

 

사실 어떤 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앞선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멀고 미약한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곤 합니다. 저는 한국문학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가 써낸 문장으로 이루어진 창작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대체 불가한 매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영업자의 마인드예요. 이 장르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을까, 접하기만 하면, 열 명이 접하면 한 명 정도는 좋아하게 될 텐데, 하고요. 언제든 더 많이들 좋아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편집자로서 유튜브에 출연하게 되기 전에도 늘 그런 마인드였는데, 그걸 좀 더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시간이 흘러 2022년 즈음에, 한국문학을 모르던 이름 모를 누군가가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민음사 유튜브 영상을 스치듯 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서점에서 한국문학 소설책, 혹은 시집을 집어 들고 갑자기 왜 이 책이 읽고 싶어지나……? 하고 자기도 모르게 스며들게 되기를, 미약하고 간절하게 바랍니다.(웃음)

 

5. 중앙도서관 1층에 있는 세계여성문학관을 애용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학시절 접했던 책 중 현재 일하는 데 있어 영향을 준 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도서관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제가 한국문학 작가를 사랑하게 된 곳이에요. 겸사겸사 사랑하게 된 이름들을 불러 봅니다. 양귀자, 박완서, 정미경, 은희경, 한강, 정이현, 김애란, 편혜영, 김사과……. 이분들이 제 한국문학 첫사랑들입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런 글을 쓰는 분들이 궁금하고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그 생각으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 것 같아요. 취업의 방향도, 취업 후에 조금 더 나의 것을 쓰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도요.

 

한국문학뿐만 아니라 해외문학도 많이 읽었는데, 주로 고전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재밌었고 그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은 <빨간 머리 > 시리즈와 <조지아의 미친 고양이>, <쇼퍼홀릭> 시리즈와 한나 스웬슨 시리즈 등이 있어요.

 

앞서 읽은 한국문학 소설들에서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발견했다면, 철저히 재미 위주로 읽었던 해외문학 도서들에서는 저의 취향을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작고 사소한 것,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것, 속되고 삿된 것, 따뜻하거나 유쾌한 것들을 좋아해 왔던 것 같아요.

 

6. 만약 새로운 글을 쓰게 된다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쓰고 싶으신가요?

 

앞서 얘기했듯 저는 대체로 현실에 발 딛고 선 이야기들을 좋아했는데요, 최근에는 신기하게도 거기에 환상을 한 방울 정도 넣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부 시절부터 환상 동화, 환상 소설을 좋아하긴 했었는데, 그걸 쓰고 싶어지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말이죠(웃음). 계속해서 내가 이전에는 모르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사람이 참 재밌다고 생각하게 돼.

 

신기함과 동시에, 소설에 작은 환상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학부 시절 들었던 환상 문학 수업을 모두 좋아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 <어셔 가의 몰락>, <장화홍련>, <모래 사나이> 같은 책을 읽고 비평 에세이를 쓰는 것이 좋았고, 이것에서부터 저의 작은 환상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피어났던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소설 속에 환상을 쓰게 되어도, 앞서 말했던 관심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에게 품는 마음, 그것으로부터 멀리 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7. 앞으로 새롭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읽고 쓰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두 가지는 모두 책을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니까요. 책을 만드는 일은 매번 새로워서, 그것이 저의 새롭게 이루고 싶은 목표입니다. 2021년에 제가 새롭게 만들게 될 책들이, 아직 아무도 보지 못한 원고들이 기대됩니다. 그 원고들을 잘 품고 편집할 수 있도록 많이 읽고 쓰는 날들을 보내고 싶습니다.

 

8. 숙명은 동문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의 많은 것들이 대학 시절로부터 왔습니다. 수많은 감정과 장면과 사람을 남겨 주어 고맙고 좋은 곳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제가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학교에 머물며 많은 것을 주웠고, 주운 것들을 제 안에 담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며, 그것들을 잘 쓸 수 있는 쪽으로 걸어온 것 같습니다.

 

학교는 많은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질문에 답하여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도서관에 혼자 앉아 있던 시간, 학교에 가득 핀 벚꽃 아래를 걷던 것, 도서관 앞 코피티암 카페, 학관 블루베리 카페까지.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연계전공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네 시에 시작해 일곱 시에 끝나던 시나리오 수업을 들으면 어둑해지는 하늘 가운데 남산타워가 반짝이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게 좋았습니다.

 

9. 출판 분야에 꿈을 가지고 있는 숙명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출판계가 연봉이 적고 복지가 좋지 않아 선배 출판인들이 모교에 강연하러 가거나 하면, 출판 분야 취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여기 오지 마…….” “다시 생각해 봐…….”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간은 진실이고 얼마간은 농담이겠지요. 그렇다면 저는 다른 쪽으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정말로 글이 좋고 책이 좋은 분들이 이쪽으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좋은 것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여기는 정말로 한 사람의 의지와 안목이 많이 반영되는 곳이고, 흔들리면서 단단해질 수 있는 곳이고, 남의 것을 만들면서 자기 것을 확립해 갈 수 있는 곳이고, 그러다가 자기 것을 만들어 내게 되면 더할 것 없이 좋은 곳입니다. 동료로 만날 날을 기다릴게요. 이것은 진심입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19기 김현경(영어영문학부19), 정시현(미디어학부20)